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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에서 '지주회사'는 '저주회사'인가?
    이슈&뉴스 2013. 12. 24. 09:36

    [취재 인사이드]


    한국에서 '지주회사'는 '저주회사'인가?

    삼성과 현대가 왜 안하지?



    김기홍·산업부 기자 / 조선닷컴 2013.8.14.수


    
	김기홍·산업부 기자.

    멜론이라는 음원 서비스로 유명한 로엔은 지난달 18일 홍콩계 사모(私募)펀드인 ‘어피니티’에 매각됐습니다. 그런데 SK가 로엔을 매각한 배경이 바로 ‘지배구조’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로엔은 그룹의 지주회사인 SK㈜의 증손(曾孫)회사입니다. SK㈜SK텔레콤SK플래닛로엔으로 출자 구조가 연결돼 있었지요. 문제는 지주회사 법령에 따라 손자회사인 SK플래닛이 증손회사인 로엔의 지분 100%를 보유해야 한다는 것에서 비롯됐습니다. SK플래닛은 이 같은 규제를 충족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올해 5월부터 불가피하게 보유 지분 매각 작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SK플래닛 홈페이지 화면 캡처.
    ▲ SK플래닛 홈페이지 화면 캡처.



    ◇경영 투명성 높이는 선진 지배구조로 지주회사 도입했는데


    2007년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지주회사로 전환한 SK가 지배구조 때문에 고민을 한다니 선뜻 이해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SK의 고민은 한마디로 지주회사 전환 이후 뜻하지 않은 규제가 시리즈처럼 이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부 방침에 따라 지주회사 체제를 도입했더니, 정작 칭찬은 못 받을망정 뜻하지 않은 규제에 발목을 잡히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를 두고 ‘지주회사의 저주(詛呪)’라고 표현하더군요. 지배구조 논란을 끝내려고 도입한 지주회사 체제가 오히려 새로운 규제에 노출되는 계기가 됐다는 것입니다.


    지주회사의 저주가 어떤 것인지 살펴볼까요.


    첫 번째는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 폐지로 인해 SK를 비롯한 지주회사가 받고 있는 역(逆)차별입니다. 과거 정부는 기업에 지주회사 도입을 유도하면서 출총제 적용을 면제해 주겠다는 당근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출총제 자체를 폐지하면서 이 당근은 전혀 영양가가 없어졌습니다. 게다가 출총제가 폐지되면서 일반 기업은 계열사 출자 때 별다른 제한을 받지 않게 됐습니다. 반면 지주회사는 금융 계열사 보유나 증손자 회사 보유와 관련해 여전히 제한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두 번째는 첫 번째보다 더 뼈아픈 문제라고 SK 관계자들은 하소연합니다. 지주회사 전환 이후 아예 사업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것입니다. 2010년 M&A(인수·합병) 시장에 매물로 나왔던 의료장비업체 메디슨 인수 건이 대표적입니다. 당시 SK는 의욕적으로 메디슨 인수를 추진하다 막바지에 중도 포기했습니다.


    외형상으로는 삼성이 메디슨 인수전에서 SK를 누른 걸로 볼 수 있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는 상장 자회사의 지분 20% 이상, 비상장 자회사의 지분 40% 이상을 보유해야 합니다.


    문제는 메디슨 내부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했습니다. 메디슨은 당시 보유 지분 40.94% 전량(全量)을 매각하려 했지만 주주끼리 소송이 붙으면서 15.19%는 매각금지 가처분을 받게 됩니다. 이에 따라 매각지분이 40.94%에서 25.75%로 떨어졌습니다. 지주회사 체제가 아닌 삼성그룹은 25.75%만 인수해도 크게 문제될 게 없었습니다. 반면 지주회사인 SK는 25.75%만 사들이면 지분을 넘겨받는 즉시 공정거래법을 위반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결국 SK는 지주회사 관련 규제에 막혀 메디슨이라는 알짜 매물의 인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건희 삼성 회장(왼쪽)과 정몽구 현대차 회장.
    ▲ 이건희 삼성 회장(왼쪽)과 정몽구 현대차 회장. SK플래닛 홈페이지 화면 캡처.


    ◇삼성·현대차 등이 절대로 지주회사 제도 도입 않는 이유


    세 번째는 금융 자회사 관련 규제입니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는 금융회사를 자회사로 둘 수 없습니다. 이에 따라 SK는 SK증권을 매각하든지 과징금을 물어야 했습니다. 실제 지난해 50억원의 과징금 폭탄을 맞았습니다. 삼성그룹이나 현대동차그룹이 금융 계열사를 여러 개 두고 있는 데 반해 정작 정부 방침을 따른 SK는 지주회사라는 이유만으로 과징금 폭탄을 맞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입니다. SK로선 지주회사 규정에 맞게 SK증권 문제를 처리하려 했지만 공정거래법 개정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네 번째는 앞서 로엔 매각 건에서도 언급한 증손회사 규제입니다. SK는 현재 SK㈜라는 지주회사 아래 주요 계열사가 자회사로 포진해 있고, 자회사인 계열사는 다시 손자회사(지주사 입장에서 손자회사)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문제는 손자회사가 자회사(지주사 입장에선 증손회사)를 설립할 때 지분을 100% 갖고 있어야 한다는 규제가 적용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SK㈜라는 지주회사 아래 자회사 SK이노베이션이 있고, 이노베이션 아래 손자회사인 SK에너지가 있습니다. 만약 SK에너지가 A기업이라는 자회사를 만들려면, 지분을 100% 보유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규정에 따르려면 SK에너지가 국내외 기업과 합작투자를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찾을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차단됩니다.


    합작투자는 기본적으로 2개 이상의 기업이 자본을 내서 만드는 회사인데, 지주회사 체제에선 손자회사는 합작해 설립될 수 없는 구조적 모순이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SK에너지는 수 년 동안 공들여 외국 자본과 합작투자 법인을 추진하고 있는데, 지주회사 규제라는 벽에 걸려 있는 상황입니다. 정부가 외국자본을 유치한 기업에 인센티브는 못줄망정 투자를 가로막고 있는 셈입니다.


    
	[클릭! 취재 인사이드] 한국에서 '지주회사'는 '저주회사'인가?


    현재로선 지주회사가 이런 제약에서 벗어날 특별한 해법이 보이지 않습니다. SK 사례는 과도한 규제가 기업에 얼마나 폐해를 끼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정치권이 기업하기 좋은 풍토를 만들어주지는 못할망정, 기업의 경영 활동을 방해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요. SK 관계자는 “이제 와서 지주회사 체제를 포기하기엔 너무나 먼 길을 와버렸고, 경제 민주화 취지에도 어긋나는 일을 할 수 없다”고 하소연합니다.


    지주회사의 저주는 다른 그룹에 ‘정부의 정책을 따르지 않아야 이익’이라는 반면교사(反面敎師)의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정부 정책에 따라 지주회사로 전환한 그룹은 끊임없이 규제 불이익을 받는 반면, 정부 정책에 따르지 않은 그룹은 ‘역시 안 바꾸길 잘 했어’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여유만만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삼성·현대자동차그룹 등이 지주회사로 전환하지 않은 이유도 표면적으론 지분 정리 비용이 막대하다는 점이 꼽히지만, 실제론 이와 같은 ‘엉터리 규제’ 시스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는 것이 재계의 대체적 분석입니다.


    김기홍·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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